많은 시민들은 이 참사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부패, 부실 공사, 감독 실패와 연결돼 있다고 의심했다. 이 사건은 곧 세르비아 전역에서 분노를 촉발했고, 특히 대학생들이 가장 먼저 거리로 나왔다.
유럽의회 문서에서도 이 사건을 **“학생들이 주도한 전례 없는 전국적 시위의 촉매제”**로 설명하고 있다.
초기에는 사고 희생자에 대한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중심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위의 의제는 세르비아 정치 시스템 전반의 문제로 확대됐다.
주요 요구는 다음과 같다.
대학생들은 집회 조직, 대학 점거, 거리 시위 등을 통해 운동을 확산시켰고, 그 결과 시위는 캠퍼스를 넘어 전국적인 시민 연대 운동으로 성장했다.
세르비아 정부와 당국은 대규모 집회를 통제하기 위해 경찰력과 보안 조치를 강화했다.
특히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일부 시위에서는 기동대가 시위대와 충돌하고 최루가스를 사용하거나 대규모 연행이 발생하기도 했다.
국내외 관찰자와 인권단체들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질서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주장하지만, 비판자들은 이러한 대응이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시위는 국제적으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세르비아는 유럽연합(EU) 가입 협상을 진행 중인 후보국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법치 수준이 지속적으로 평가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EU 기관과 유럽의회는 특히 다음과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유럽평의회 인권위원도 시위 진압 과정에서 강경한 경찰 대응과 체포가 집회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며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이 문제는 단순한 국내 정치 갈등을 넘어 세르비아의 EU 가입 전망과 국제적 평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노비사드 철도역 참사 이후 시작된 시위는 2025년까지 수백 개 도시와 지역사회로 확산되며 최근 수십 년 사이 세르비아에서 가장 큰 시민운동 중 하나로 성장했다.
많은 시위 참가자에게 이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부패, 투명성 부족, 제도적 책임 부재를 상징하는 사건이 됐다. 앞으로 이 운동이 실제 정치 개혁이나 조기 총선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이미 세르비아 정치 지형과 국제적 관심을 크게 바꿔 놓았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