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칸이 AI 이야기를 행사장 밖으로 밀어낸 것은 아니다. 2026년 개막 보도는 AI가 영화와 일자리에 미칠 영향이 영화제 주변의 주요 논쟁 중 하나였다고 전했다 . 영화제는 상징적으로 경쟁 부문에서 인간 창작의 가치를 지키려 하면서도, 산업과 창작 현장에서는 AI 도구를 둘러싼 논의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이 흐름은 이미 2023년에도 보였다. 프랑스 창작자 단체 SACD와 국립영화영상센터(CNC)가 칸에서 마련한 라운드테이블은 생성형 AI를 창작자에게 ‘도구이자 위협’으로 다뤘고, 저작권과 저작자성 문제를 논의의 중심에 놓았다 . 칸 생태계가 향하는 쪽은 침묵이나 전면 거부보다, 논의하고 연구하고 규칙을 만드는 ‘관리’에 가깝다.
AI 사용을 조금이라도 허용하면 곧바로 나오는 질문이 ‘어디까지 밝혀야 하는가’다. 2026년 영화제 전 보도에 따르면 칸 프로그래머와 선정위원회는 출품 단계에서 AI 사용 여부를 어떻게 공개하게 할지 논의했지만, 이는 아직 공식 정책으로 굳어진 단계는 아니었다 . 업계 표준이 없는 상황에서는 같은 AI 사용이라도 단순 보정 도구인지, 이미지 생성인지, 연기 합성인지에 따라 평가와 논란의 무게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관련 사례는 다른 ‘칸’에서도 나왔다. 칸 라이언즈는 칸영화제와 별개인 국제 광고·크리에이티비티 시상식이다. 이 행사는 2025년 한 출품작의 캠페인 설명 영상에서 실제 사건과 캠페인 성과를 흉내 내는 AI 생성·조작 콘텐츠가 사용됐고, 그 결과 심사위원단에 부정확한 정보가 제시됐다고 밝혔다. 이후 합성 콘텐츠와 생성형 AI에 대한 강화 조치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 이 사례가 칸영화제 규칙을 직접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심사와 수상 시스템에서 AI 표시가 왜 신뢰의 핵심이 되는지는 분명히 보여준다.
할리우드가 조심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노동 문제다. 미국작가조합(WGA)은 AI가 많은 창작 노동자의 고용과 보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핵심 의제가 됐고, 2023년 단체협약에서 ‘획기적인 AI 보호장치’를 마련했으며 이를 강하게 집행하겠다고 밝힌다 .
배우 쪽도 비슷하다. LA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SAG-AFTRA, 즉 미국 배우·방송인 노조 지도부는 2026년 잠정 계약에서 더 강한 AI 보호를 성과로 내세웠다. 새 지침은 인간 연기를 우선하며, 합성 배우가 제작에 ‘상당한 추가 가치’를 주지 않는 한 인간 역할에 AI를 쓰지 않도록 하는 방향을 담았다 . 관련 법학 연구도 2023년 파업 이후 SAG-AFTRA의 보호장치가 배우의 초상과 디지털 복제본을 동의 없이 사용하는 일을 막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한다
.
이 맥락에서 무어의 ‘함께 일하자’는 말은 ‘규칙 없이 써도 된다’와 다르다. 작가와 배우에게 핵심은 AI가 대본, 이미지, 목소리, 디지털 복제본을 만들 수 있느냐만이 아니다. 누가 동의했는지, 누가 보상을 받는지, 누가 크레딧을 갖는지, 그리고 인간 노동자가 대체되거나 착취되지 않는지가 본질적인 쟁점이다 .
무어의 칸 발언이 보여준 것은 할리우드의 무게추가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의 방어적 질문이 ‘AI를 막을 수 있나’였다면, 지금의 질문은 ‘인간 창작을 비우지 않으면서 어떤 조건으로 AI를 쓸 수 있나’에 가깝다.
현재 떠오르는 타협점은 조건부 도입이다. AI는 제작 흐름의 일부가 될 수 있지만, 그 정당성은 인간 창작의 우선성, 명확한 공개, 의미 있는 동의, 공정한 보상, 집행 가능한 노동 보호에 달려 있다. 칸의 인간 창작 방어 메시지, 생성형 AI 주도 작품에 대한 경쟁 부문 선 긋기 보도, 그리고 WGA·SAG-AFTRA의 보호 요구는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할리우드는 AI를 더 이상 단순히 거부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지 않지만, AI가 영화의 기준을 스스로 정하도록 내버려둘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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