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그동안 현금과 부채를 조정해 ‘순현금 중립’ 상태를 유지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현금과 부채를 독립적으로 평가하겠다고 방향을 바꿨다. 이는 투자 급증을 보장하는 조치는 아니지만, AI 사업에 필요한 비용을 판단할 때 재무적 제약 하나를 완화한다.
이 변화는 대형 인수합병 가능성도 키운다. 애플은 전통적으로 내부 개발과 소규모 인수를 선호해 왔지만, 터너스 체제에서는 다음과 같은 특정 역량의 공백을 메우는 거래가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로이터는 애플이 AI 작업에 사용되는 서버 프로세서를 강화하기 위해 여러 칩 스타트업에 인수 의향을 타진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는 애플이 관심을 보였다는 증거일 뿐, 실제 거래가 성사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형 인수에는 위험도 따른다. 외부 기술을 애플의 강력하게 통제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생태계에 통합해야 하고, 핵심 인력을 붙잡아야 하며, 규제 당국의 심사도 넘어야 한다. 기술을 추가했지만 제품 출시 속도가 느려진다면 기업가치를 높이기보다 훼손할 수 있다.
새 전략의 성패를 가장 먼저 보여줄 제품은 Apple Intelligence와 Siri가 될 전망이다. 개편된 Siri의 출시가 지연됐고, 일부 AI 기능에는 외부 기술이 활용되면서 애플의 접근 방식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애플은 필요할 경우 경쟁사의 기술을 사용하는 데도 열려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애플은 Siri 개선을 위해 구글의 Gemini 모델을 사용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터너스에게 필요한 것은 반드시 세계 최대 규모의 범용 AI 모델을 직접 만드는 일이 아니다. 더 중요한 과제는 사용자가 일상적인 작업에서 믿고 쓸 수 있는 일관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AI 기능이 아이폰·맥·아이패드·애플워치·에어팟·비전 제품 전반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고, 애플이 강조해 온 프라이버시 기준도 충족해야 한다.
경쟁사보다 늦게 출시한 기능이라도 완성도가 크게 높다면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불안정한 기능을 서둘러 내놓으면 고객 신뢰가 약해지고, 애플의 통합 생태계가 강점이 아니라 제약처럼 보일 위험이 있다.
팀 쿡은 집행위원장으로 애플에 남는다. 애플은 이번 승계를 장기적인 계획에 따른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쿡의 지속적인 관여는 애플이 재무 규율을 즉시 포기할 가능성을 낮춘다. 다만 집행위원장의 영향력과 CEO의 경영 권한이 실제로 어떻게 나뉘는지는 중요한 변수다.
따라서 터너스가 물려받는 것은 기존 원칙을 버리라는 권한이 아니라, 일정한 가드레일 안에서 쇄신하라는 과제에 가깝다. 애플은 투자를 늘리더라도 제품 품질, 하드웨어 교체 수요, 서비스 이용, 생태계 충성도처럼 측정 가능한 성과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AI 지출은 수익으로 이어지기 전에 마진을 압박할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애플은 수년이 걸릴 수 있는 AI 역량 확보를 위해 단기 실적이나 자사주 매입 여력을 어느 정도까지 희생할지 결정해야 한다.
실제 전략 변화는 발표문보다 운영 지표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애플의 기회는 가장 먼저 또는 가장 큰 AI 모델을 만드는 데 있지 않을 수 있다. 애플 실리콘, 하드웨어, 운영체제, 서비스, 25억 대가 넘는 기기 유통망을 결합해 다른 기업이 쉽게 복제하기 어려운 AI 제품 경험을 만드는 것이 더 현실적인 차별화 방식이다.
반대로 가장 위험한 결과는 어정쩡한 중간 지대다. 마진을 희생할 만큼 지출하면서도 역량 격차를 좁히지 못하는 경우다. 터너스의 과제는 애플의 절제를 AI 시대의 경쟁 우위로 바꾸는 것이다. 절제가 지나치게 느린 대응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도 그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