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WoS 납기가 약 52~78주로 늘어나고 예약이 2027년까지 이어지면서 병목은 단기 현상이 아니라 다년간의 구조적 문제가 됐다. 결국 생산능력을 먼저 예약한 대형 고객이 유리하고, 설계가 끝났더라도 뒤늦게 시장에 진입한 기업은 물량을 받기 어려워진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TSMC의 CoWoS 생산능력은 2024년 말 월 약 3만5,000장의 웨이퍼에서 2026년 말 약 12만~13만 장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상당한 증설이지만, 새로 추가된 물량도 AI 수요에 빠르게 흡수되면서 시장은 여전히 공급 부족 상태로 묘사된다.
수치는 집계 범위와 정의에 따라 차이가 있다. TSMC의 CoWoS만 계산한 전망이 있는가 하면, CoWoS 유사 공정이나 외주 패키징 물량을 포함한 추산도 있다. 모건스탠리는 전 세계 CoWoS 수요가 2026년 139만4,000장에서 2027년 269만4,000장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으며, TSMC의 월 생산능력은 2027년 말 20만 장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확정된 생산 실적이 아니라 전망치지만,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필요한 투자 규모를 보여준다.
TSMC는 장기적인 대안도 모색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비세라 롱탄 공장에서 310×310㎜ 패널을 활용하는 CoPoS 패널 패키징 파일럿이 진행 중이며, 양산 목표 시점은 2028년 말 또는 2029년이다. 당장 공급 부족을 해결할 수단이라기보다 차세대 확장 경로에 가깝다.
업계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TSMC의 CoWoS 물량이 가득 차면서, 주요 공통 고객을 위한 일부 후공정 첨단 패키징 주문이 인텔 말레이시아 사업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사실이라면 TSMC가 전공정 웨이퍼 생산을 이어가는 동안 인텔이 일부 후공정을 맡는 구조가 가능해진다. 경쟁사가 같은 고객의 공급망에 참여하는 셈이다.
다만 제공된 보도에서 TSMC와 인텔은 이 내용을 공식 확인하지 않았다. 또 다른 정황으로 업계 보도는 약 13억 달러 규모의 HBM이 말레이시아로 출하됐다고 전했다. 이는 HBM이 말레이시아의 패키징 거점으로 이동했을 가능성과 양립하지만, 고객·제품·공정·계약 조건은 공개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무역 데이터만으로 특정 TSMC-인텔 주문 이전을 입증할 수는 없다.
현재 가장 신중한 결론은 이렇다. 말레이시아가 첨단 패키징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커지고 있으며, 고객들이 TSMC의 배정 완료된 생산체계 밖에서 물량을 찾는 과정에서 인텔이 일부 후공정 사업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텔의 EMIB 방식은 패키지 전체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대형 실리콘 인터포저 대신, 패키지 기판 안에 국소적인 실리콘 브리지를 삽입한다. 대형 멀티다이 설계에서 사용하는 실리콘 면적을 줄이고 소재 비용을 낮출 가능성이 있는 구조다.
업계 보도는 EMIB-T의 패키지 수율이 약 90%에 근접했으며, 패키징 견적이 TSMC CoWoS보다 약 40~50% 낮다고 전한다. 다만 이 수치는 업계 소식통에 기반한 지표로, 동일 조건에서 독립적으로 공개된 수율·가격 자료와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핵심 변수는 기판이다. 유니마이크론은 EMIB-T가 아직 성숙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설명했으며, 유니마이크론·이비덴·신코전기 등 기판 공급업체들이 2027년 말 양산 초기 약 50%의 기판 수율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패키지 수율이 90%에 가깝더라도, 대형·고난도 ABF 기판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충분한 수율을 확보하지 못하면 전체 시스템의 양산은 제한된다.
인텔은 EMIB-T가 2027년 고객 양산을 위한 고수율 생산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EMIB-T는 신뢰할 만한 공급망 다변화 옵션이지만, 성격상 중기 대안에 가깝다. 당장 업계 전체의 CoWoS 부족을 해소할 가능성은 낮다.
패키지 크기를 단순 비교하는 데도 주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최대 크기는 CoWoS 세대, 레티클과 인터포저 설계, 브리지 배치, 기판, HBM 스택 수, 열 관리와 전력 요구사항에 따라 달라진다. 서로 다른 로드맵에서 언급된 최대 치수나 레티클 수를 일렬로 놓고 어느 기술이 우월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단기적인 차이는 더 분명하다. CoWoS는 지금 사용할 수 있지만 물량이 배정돼 있고, EMIB-T는 2027년 이후 인증된 대안으로 추가될 예정이다.
병목은 TSMC와 인텔이라는 두 경쟁사 밖에도 기회를 만들고 있다. 유니마이크론은 인텔 및 일본 공급업체들과 EMIB-T 기판을 개발하는 동시에 AI GPU, 맞춤형 AI 칩, 고성능 컴퓨팅(HPC)용 ABF 기판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관건은 단순히 설비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이례적으로 크고 복잡한 기판의 수율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반도체 조립·테스트 외주업체(OSAT)인 ASE도 조립과 테스트 물량을 흡수하고 외주·초과 수요의 수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ASE가 TSMC의 통합 CoWoS 공정을 자동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이전 가능 물량은 고객 인증, 인터포저 또는 RDL 조달, HBM 통합, 테스트 요건에 달려 있다.
이 때문에 업계의 대응은 점점 분산되고 있다. 단일 패키징 라인에 의존하기보다 파운드리, OSAT, 기판 제조사, 메모리 업체, 소재 공급업체 전반에서 생산능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AI 가속기 공급이 느려지고 예측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HBM이나 첨단 패키징 중 하나만 부족해도 로직 다이가 준비돼 있는 완제품 시스템의 출하가 지연될 수 있다. 선제적으로 생산능력을 예약할 구매력과 긴 계획 기간을 가진 대형 고객에게 물량이 집중되는 효과도 나타난다.
데이터센터 운영업체 입장에서는 AI 학습 클러스터 설치가 늦어지고 장기 공급계약의 가치가 커진다. 칩 설계업체에는 패키지 아키텍처 선택의 비용도 높아진다. CoWoS에서 다른 방식으로 전환하는 일은 빈 조립 라인을 찾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연결 구조, 기판, HBM 구성, 열 설계, 테스트 공정을 모두 새로 검증해야 한다.
부족 현상은 HBM, ABF 기판, 조립·테스트, 패키징 소재와 관련 부품으로도 번지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다만 특정 비(非)AI 산업 전반에 정량적인 공급 부족이나 가격 충격이 발생했다는 사실까지 입증된 것은 아니다. 현재 근거로 가장 강하게 말할 수 있는 범위는 경제 전반의 혼란이라기보다 반도체 후공정과 메모리 생태계 내부에서 AI 수요가 다른 물량을 밀어내는 현상이다.
TSMC의 CoWoS 병목은 AI 하드웨어의 경쟁 지도를 바꾸고 있다. 일부 후공정 물량을 인텔 말레이시아로 이동시키고, ASE와 기판 공급업체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며, 인텔 EMIB-T를 두 번째 패키징 경로로 부상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현재 공개된 근거가 보여주는 것은 ‘인텔의 TSMC 대체’가 아니라 공급망 다변화다. CoWoS는 여전히 검증된 생산 주력 방식이다. EMIB-T는 비용과 패키지 수율 측면에서 매력적인 가능성을 보이지만, ABF 기판 수율과 고객 인증, 2027년 양산 일정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AI 칩 공급망은 TSMC를 대체할 완성된 기술이 등장해서가 아니라,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여러 업체로 분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