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의 운항 차질은 최근 에너지 위기가 남긴 교훈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에너지 안보는 석유나 가스 화물을 한 척 더 확보하는 문제만이 아니다. 경제가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연료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줄이는 문제이기도 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번 중동발 공급 충격을 석유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교란으로 규정했다. 2026년 3월, 중동 에너지 인프라 공격과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유조선 운항 제한이 겹치면서 세계 석유 공급은 하루 1,010만 배럴 감소했다.
47 이 정도의 충격은 풍력·태양광·에너지저장장치·전력망·옥상 태양광·전기화가 이제 기후정책 수단을 넘어 회복력 인프라로 거론되는 이유를 보여준다.
국내 전력 생산이 안보 자산이 된 이유
석유, 액화천연가스(LNG), 석탄은 해상 병목, 해외 공급자, 급격한 가격 변동에 노출될 수 있다. 풍력과 태양광도 설비·원자재 수입, 안정적인 전력망에 의존하지만, 발전 과정에서 연료를 계속 수입할 필요는 없다.
이 차이는 정책 목표를 바꾼다. 국내 저탄소 전원을 늘리면 장기적으로 연료 가격 급등에 대한 노출을 낮출 수 있다. 저장장치와 유연한 전력수요 관리는 해가 없거나 바람이 약한 시간에도 이 전력을 활용할 수 있게 한다. 청정전력과 전력망이 수요 증가 속도에 맞춰 확충된다면, 수송과 난방의 전기화도 이런 효과를 전력 부문 밖으로 넓힐 수 있다.
물론 이는 전략비축유, 공급선 다변화, 비상시 수요 감축 같은 전통적 에너지 안보 수단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전략이다. IEA에 따르면 분쟁 전 하루 약 2,000만 배럴이 지나던 호르무즈 해협의 평균 물동량은 3~5월 하루 270만 배럴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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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발전설비만큼 중요한 전력망과 인허가
유럽의 대응은 빠른 설비 확충에서 확인된다. 유럽은 2026년 상반기에 풍력발전 8.8GW를 새로 설치했다. 이는 2025년 같은 기간보다 30% 늘어난 규모다. 독일은 3.4GW를 추가했으며, 유럽풍력협회 WindEurope는 2026년 연간 신규 설치량을 24GW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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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의미는 풍력 터빈 수 자체에만 있지 않다. WindEurope는 상반기 증설분이 유럽 약 70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고, 연간 LNG선 25척분에 해당하는 화석연료 수입을 대체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5 이는 모든 시간대의 가스 대체량을 직접 측정한 수치는 아니지만, 정책의 논리를 잘 보여준다. 현지 발전량이 늘수록 구매하고 운송해야 하는 연료 물량은 줄어든다.
이제 병목은 발전설비 증설 못지않게 중요하다.
- 인허가와 사업 집행력은 발표된 설비가 실제 전력 생산으로 이어지는지를 좌우한다.
- 송전망과 해상풍력 계통연계는 발전지의 전기를 수요지로 보내기 위해 필수적이다.
- 저장장치, 수요 유연성, 국가 간 전력망 연계는 변동성 전원을 관리하고 가스발전 기반의 수급조정 의존을 낮추는 데 기여한다.
- 옥상 태양광과 전기화는 발전을 분산시키고 가계의 소매 연료비 노출을 줄일 수 있다. 다만 실제 효과는 지역별 요금제, 금융 여건, 계통 규정에 달려 있다.
수입 에너지 의존의 경제적 비용도 드러났다. 유로지역 연간 물가상승률은 7월 2.9%에서 8월 3.3%로 올랐고, 에너지 물가상승률은 14.3%에 달했다.
59 유럽중앙은행(ECB)은 9월 에너지발 물가 압력과 그 지속 위험을 이유로 정책금리를 25bp(0.25%포인트) 올려 2.50%로 인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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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재생에너지와 안정적 전력 공급을 잇는 저장장치
수입 연료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에 중요한 질문은 재생에너지 설비를 얼마나 많이 짓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전력수요가 가장 높은 시간대에도 이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쓸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 때문에 에너지저장장치는 안보 전략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인도의 국가전력계획은 2031~32년까지 73.93GW·411.4GWh의 에너지저장 설비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이 가운데 배터리 에너지저장시스템(BESS)은 47.24GW·236GWh, 양수식 저장은 26.69GW·175GWh다.
29 저장장치가 태양광 사업의 부가 설비가 아니라 전력계통 인프라로 계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인도의 확충 과제는 여전히 크다. 업계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기준 설치된 배터리 저장장치는 8.7GWh이고, 약 53GWh 규모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17 배터리만 집계하는지, 양수식 저장까지 포함하는지에 따라 통계의 범위가 다르므로 용량 비교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다만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전력계통에는 출력 보강 수단, 송전망, 그리고 유연성에 보상하는 시장 제도가 필요하다는 방향성은 분명하다.
아시아 전반에서 대규모 재생에너지·저장 목표는 경매, 장기 구매계약, 전력망 보강, 제조업 투자를 위한 사업 파이프라인을 만들 수 있다. 다만 목표의 성패는 숫자 자체보다 사업이 실제로 계통에 접속하고, 자금을 조달하며, 신뢰할 수 있는 시장 제도 아래 운영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역설: 회복력에는 자본이 필요하지만, 돈은 더 비싸질 수 있다
연료 가격 변동성은 청정전력 확대의 정책적 근거를 강화한다. 그러나 같은 충격이 단기적으로 전환 자금 조달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유가·가스·LNG 가격이 오르면 가계, 운송, 산업계의 비용이 함께 뛴다. 물가 상승이 고착되면 금리 상승은 풍력단지, 송전선, 배터리 시스템처럼 초기 투자비가 큰 자산의 금융비용을 높인다.
정책당국이 마주한 긴장은 여기에 있다. 미래의 연료 충격 노출을 줄일 인프라는, 정작 현재의 에너지 충격이 재정과 기업 재무를 압박하는 시기에 건설해야 한다.
달라진 에너지 안보의 정의
호르무즈 해협 차질이 전통적 에너지 안보를 무의미하게 만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정의를 넓혔다. 전략 비축과 공급국 다변화는 여전히 필수적인 비상 대응 수단이다. 하지만 이들만으로 국제 연료 가격이나 분쟁 위험이 높은 해상 항로에 대한 노출을 없앨 수는 없다.
더 지속적인 회복력 전략은 이런 안전장치에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 저장장치, 강화된 전력망, 유연한 전력수요, 전기화를 결합하는 방식이다. 이는 절대적인 의미의 에너지 자립을 뜻하지는 않는다. 대신 지정학과 시장이 순식간에 가격을 바꿀 수 있는, 계속 들어와야 하는 연료에 대한 의존을 낮추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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