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투기적 성향의 자금은 베네수엘라에 몰렸다. 2026년 1월 초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를 구금하자, 베네수엘라 정부와 국영 석유 회사 PDVSA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채권 가격이 급반등했다. TCW의 데이비드 로빈스는 미국이 약 600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 구조 조정에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궁극적인 회수 가치가 액면가의 40센트 수준에서 60센트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
백악관과의 각별한 관계가 펀더멘털(기초 체력) 신용 위험을 없애주는 것은 아니다. JP모건의 2026년 4월 EMBI 데이터에 따르면, 트럼프 우호국들의 국가 부도 위험 지표(CDS 프리미엄)는 여전히 극도로 높다. 베네수엘라는 5,557bp(1bp=0.01%포인트)로 이 지역 최고 수준이었으며, 아르헨티나 556bp, 에콰도르 411bp, 엘살바도르 318bp가 그 뒤를 이었다. 이는 우루과이(62bp)나 칠레(83bp) 같은 안정적인 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 블룸버그 리네아(Bloomberg Línea)의 분석처럼, “워싱턴 접근권이 월가의 신뢰로 자동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
인도는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는 가장 극명한 반대 사례다. 광범위한 지정학적 우호 관계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트럼프 행정부와 무역 협정을 체결하지 못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2026년 1월에만 인도 주식을 40억 달러 이상 순매도하며 전년도 기록적인 자금 이탈 추세를 이어갔다. 인도 루피화는 12개월간 달러 대비 5% 넘게 하락하며, 같은 기간 가치가 떨어진 몇 안 되는 신흥국 통화 중 하나로 전락했다 .
이러한 괴리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단순한 지정학적 공조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장 접근권, 무역 협정, 그리고 정상 간 개인적 외교 관계야말로 ‘트럼프 프리미엄’이라는 게임의 진짜 화폐로 보인다.
정치적 충성도 따위는 무시하는 외부 충격, 즉 이란 분쟁 앞에서 이 전략의 취약성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유가 폭등과 글로벌 인플레이션 기대를 촉발하며 광범위한 채권 시장 붕괴를 촉발했다 .
이번 매도세는 친구와 적을 가리지 않고 덮쳤다. 이는 글로벌 거시 경제의 충격파 앞에서는 백악관 인맥에서 비롯된 어떤 ‘프리미엄’도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나인티 원( Ninety One)의 타이스 루(Thys Louw) 운용역이 이 전략의 핵심 리스크를 명쾌하게 정리했다. “이것은 시장에 양날의 검이다. 정치적으로 동맹을 맺은 국가에는 혜택이 돌아갈 가능성이 크지만, 좌파 정부에 대해서는 미국이 정책 도구를 동원해 압박을 가하면서 시장 변동성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면성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친미 국가들은 아르헨티나의 200억 달러 IMF 구제금융, 에콰도르의 채권 시장 복귀 등 특별 금융 외교의 혜택을 받는 반면, 좌파 성향으로 인식되는 국가들은 역풍을 맞고 있다. 그래머시(Gramercy)의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트럼프 행정부가 서반구 국가들에게 “편을 선택하라”며 더욱 거세게 압박할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
이에 따라 포트폴리오 매니저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T. Rowe의 아론 기포드는 트럼프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를 둘러싼 압박 수위를 높일 것이라는 우려에 파나마 국채에 대해 신중론으로 돌아섰다. TCW는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 협정) 재협상을 앞둔 멕시코에 대한 투자 비중을 줄이고 있다 .
뱅가드(Vanguard)의 마우로 파비니가 요약한 새로운 현실은 결국 기민한 대응을 요구한다. “지정학을 요소에 집어넣으면 모든 것이 변합니다. 훨씬 더 유연한 작전을 펼쳐야 하죠.” 투자자들에게 이 말의 의미는 분명하다. 정치적 바람이 순풍일 때는 수익을 쫓되, 대통령과 친구라고 해서 피해 갈 수 없는 다음 폭풍우가 올 때를 대비해 끊임없이 지평선 너머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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