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부채에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단일 집계 기준이 없다. 하이퍼스케일러의 회사채만 포함할지,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파이낸싱·사모대출·자산유동화·장비 공급업체까지 포함할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따라서 발표된 수치도 크게 다르다. 7월 초까지 네 개 대형 발행사의 채권 발행액은 약 1,940억 달러로 집계됐지만 , 더 넓은 범위의 하이퍼스케일러를 포함한 추정치는 이후 2,200억 달러를 웃돌기도 했다.
골드만삭스는 2026년 전체 AI 관련 부채 발행액을 약 4,890억 달러로 추정했으며, 이 가운데 약 40%가 하이퍼스케일러가 직접 발행한 물량이라고 분석했다.
필요한 자금 규모는 더 크다. 모건스탠리는 2028년까지 데이터센터와 관련 하드웨어에 약 3조 달러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하며, 그 절반가량이 외부 신용시장에서 조달될 수 있다고 봤다. 다른 추정에서는 총 3조2,000억 달러 가운데 약 1조7,500억 달러가 신용시장 조달분으로 제시됐다.
이는 확정된 발행액이 아니라 AI 인프라와 금융 조달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전망치다.
빅테크의 차입이 미국 시장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은 Alphabet의 첫 호주달러 채권 발행에서 확인된다. 구글의 모회사 Alphabet은 8월 19일 만기 3년·5년·10년·20년 채권을 통해 55억 호주달러를 조달했다. 투자자 주문액은 180억 호주달러를 넘어 발행액의 세 배 이상이었다.
이 거래가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하이퍼스케일러가 미국 투자자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여러 통화로 채권을 발행하면 새로운 투자자 기반과 수요에 접근할 수 있지만, 동시에 환율 관리와 시장 유동성이라는 추가 고려사항이 생긴다.
Alphabet은 이미 유로·파운드·스위스프랑·엔화 회사채 시장에서 상당한 차입 잔액을 보유하고 있다. Amazon은 3월 145억 유로 규모의 8개 트랜치 채권을 발행했으며, 이는 유로 회사채 시장 사상 최대 거래로 보도됐다. AI 인프라 투자금이 특정 국가나 통화 시장에 집중되지 않도록 조달처와 투자자 기반을 분산하는 모습이다.
AI 관련 차입 증가는 정부가 장기 자금을 대규모로 조달하는 시기와 겹쳤다. AI 기업과 각국 정부가 동시에 채권 발행을 늘리면서 주요 경제권의 실질 차입 비용은 10여 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30년물 실질금리는 약 3%로 18년 만의 고점 부근에 있다.
미국 30년물 명목 국채금리도 5.3%를 넘어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배경에는 인플레이션 우려, 재정 부담, 지정학적 불확실성, 약 40조 달러에 육박하는 미국 국가부채가 자리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회사채와 국채 모두 투자자의 더 큰 보상을 요구받을 수 있다. 장기 자금을 빌리는 차입자는 많아지고, 투자자는 수십 년간 자금을 묶어두는 위험에 대해 더 높은 금리를 원하기 때문이다.
핵심은 AI 부채와 국채 금리의 관계를 ‘단일 원인’이 아니라 추가적인 수급 압력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AI 회사채 발행은 장기 자본을 둘러싼 경쟁을 강화하고 기간 프리미엄을 높일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과 재정 차입, 거시경제 위험만으로도 국채 금리는 독립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
하이퍼스케일러 채권의 수익률은 발행사와 만기에 따라 약 4.75~8% 수준으로 제시되고 있다. 상당수가 투자등급이고 만기가 긴 채권이어서, 안정적인 이자수익을 원하는 투자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표면적인 수익률만으로 투자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듀레이션 위험: 높은 수익률의 상당 부분은 장기 만기에서 나온다. 시장금리가 더 오르면 기존 채권 가격은 크게 하락할 수 있다. 쿠폰이 높다고 해서 10년물이나 20년물의 평가손실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신용 및 스프레드 위험: 하이퍼스케일러 모회사가 발행한 채권과 데이터센터 개발사, 장비 공급업체, 소규모 AI 기업, 특수목적법인이 발행한 채권은 서로 다른 상품이다. 투자자는 ‘AI 채권’이라는 이름보다 선순위 여부, 담보, 보증, 임대차 계약, 구조적 후순위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AI 수익성 위험: 장기적인 AI 인프라 수익이 충분히 입증되기 전에 차입이 먼저 늘고 있다. AI 수익화가 늦어지거나 자본지출이 계속 증가하고 클라우드·AI 사업의 마진이 약해지면, 발행사가 투자등급을 유지하더라도 신용 스프레드가 확대될 수 있다.
물량 흡수 위험: 발행 직후 주문이 많다고 해서 앞으로도 같은 가격에 모든 물량이 소화된다는 보장은 없다. 바클레이스 애널리스트들은 투자등급 회사채 시장이 하이퍼스케일러의 예상 자금 수요를 모두 수용하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발행이 늘어나면 기업은 더 높은 쿠폰을 제시하거나 사모대출·주식 발행·복잡한 금융 구조를 활용해야 할 수 있다.
통화 및 유동성 위험: 호주달러나 유로 등 외화 채권은 환율 변동과 시장별 유동성 차이에 노출된다. 환헤지를 하면 일부 위험을 줄일 수 있지만, 헤지 비용과 실행 위험이 추가된다.
AI 차입은 글로벌 자본시장에 새롭고 큰 자금 수요를 만들었다. 장기 투자자에게는 일부 정부채를 대신할 수 있는 우량 회사채 선택지가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AI가 채권시장 매도세를 일으켰다’고 단정하는 것은 근거가 지나치게 좁다.
보다 타당한 해석은 이렇다. AI 부채 급증은 정부의 대규모 차입과 맞물려 시장이 흡수해야 할 자금 조달 물량을 늘리고,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과 장기 금리 위험에 더 높은 보상을 요구하도록 만들 수 있다.
소득 중심 포트폴리오에서 하이퍼스케일러 채권은 국채의 대체재라기보다 분산된 회사채 투자로 접근하는 편이 적절하다. 발행사의 재무건전성과 채권의 선순위 여부를 비교하고, 만기를 나눠 투자하며, 환율 노출을 관리해야 한다. 수익률이 8%에 가까운 상품일수록 프로젝트·레버리지·유동성·구조적 위험이 왜 추가되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추격 매수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