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SK하이닉스를 EMIB의 공식 대량 생산 고객으로 확보했다는 공개 증거는 아직 없다. 현재까지 확인되는 흐름은 그보다 이른 단계다. 2026년 5월 SK하이닉스가 자사 HBM과 인텔의 EMIB 기반 2.5D 패키징을 결합하는 연구·통합 시험을 진행하고, 향후 생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소재와 부품을 검토한 것으로 보도됐다. 당시 보도에서 양사는 상업 계약을 확인하지 않았다. 456
이 차이는 중요하다. 패키징 시험은 HBM, 로직 다이, 기판, 조립 공정이 함께 작동하는지 검증하는 절차다. 하지만 시험만으로 고객이 생산 물량을 약정했거나 최종 공급업체와 가격·신뢰성 조건에 합의했다는 뜻은 아니다.
시험에서 양산 준비로 이어지는 과정
현재까지 보도된 협력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 통합 시험: SK하이닉스가 인텔의 EMIB 기판 위에 HBM과 시스템 반도체를 결합하는 시험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표는 메모리 다이와 로직 다이를 연결하는 또 다른 경로로 EMIB가 적합한지 확인하는 것이다. 451
- 소재·부품 검토: SK하이닉스가 향후 양산에 필요한 소재와 부품을 살펴보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는 최종 생산 결정이라기보다 제품을 실제 제조 단계로 옮길 수 있는지 검토하는 산업화 과정에 가깝다. 45
- 공급업체 인증: LG이노텍은 EMIB용 FC-BGA 기판 샘플을 SK하이닉스에 공급하며 공급망 진입을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해당 샘플은 엔지니어링 단계의 초기 물량으로 설명됐고, 실제 상용 채택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1155
첨단 패키징은 단순히 칩 설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텔과 SK하이닉스가 양산에 들어가려면 검증된 기판 공급망, 반복 가능한 조립 공정, 충분한 생산능력, 그리고 HBM이 탑재된 완제품 패키지의 성능 데이터를 함께 확보해야 한다.
SK하이닉스가 CoWoS 외 대안을 검토하는 이유
핵심 배경은 공급망 다변화다. TSMC의 CoWoS는 AI 가속기 패키징의 중심 기술로 자리 잡았지만, 업계에서는 첨단 패키징 생산능력이 빠듯하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두 번째 패키징 경로가 확보되면 메모리 업체와 고객사는 AI 칩 생산 물량을 배분할 때 선택지를 넓힐 수 있다. 413
인텔 EMIB는 전통적인 대형 인터포저 기반 CoWoS와 구조가 다르다. 패키지 전체 아래에 큰 실리콘 인터포저를 놓는 대신, 인접한 다이 사이에 고밀도 연결이 필요한 부분에만 작은 실리콘 브리지를 유기 기판 안에 삽입한다. 밀도가 낮은 신호는 일반적인 기판 배선을 사용한다. 821
이 방식이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은 다음과 같다.
- 실리콘 사용량 감소: 소형 브리지를 활용하면 대형 인터포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결함에 노출되는 실리콘 면적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 비용·확장성 개선 가능성: 패키지 전체를 덮는 인터포저보다 필요한 부분에만 브리지를 배치하면 인터포저 소재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대형 패키지를 모듈 방식으로 확장하는 데도 유리할 수 있다. 419
- 기계적·열적 부담 완화 가능성: 대형 실리콘 인터포저를 사용하지 않으면 일부 설계에서 패키지 두께, 휨, 열·기계적 응력을 줄일 여지가 있다. 다만 실제 결과는 전체 패키지 구조에 따라 달라진다. 2829
- 공급망 선택지 확대: CoWoS 생산능력이 부족하거나 특정 공급업체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을 때 EMIB를 대안 또는 보조 경로로 활용할 수 있다. 1323
HBM 기반 AI 패키지에서는 이 같은 차이가 특히 중요하다. 고가의 로직 다이와 여러 개의 HBM 스택을 결합한 뒤 인터포저나 조립 공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폐기 비용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분석가들은 인터포저 기반 HBM 패키징의 부담으로 비용, 패키지 두께, 수율 위험, 생산능력 제약, 폐기 비용을 꼽아 왔다. 2324
‘90% 수율’이 의미하는 것과 의미하지 않는 것
8월 보도에서는 인텔의 EMIB-T 패키징 수율이 약 90%에 도달했으며, 2027년 양산을 목표로 한다고 전했다. 동시에 기판 수율은 약 50% 수준으로 알려져 기판이 주요 병목으로 남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1
다만 이 수치는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 90%라는 숫자는 공급망에서 전해진 보고 수치이지, 모든 EMIB-T 제품이나 HBM과 로직을 포함한 완성 패키지에 적용되는 독립 검증 수율이 아니다. 브리지 또는 특정 패키징 공정의 수율이 높다고 해서 최종 제품 수율까지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기판, 접합, 열 특성, 전기 검사, 신뢰성 인증, 고객별 조립 조건이 모두 최종 결과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인텔이 증명해야 할 것은 개별 공정이 아니라 전체 제조 체계다.
- EMIB-T가 고객이 요구하는 대역폭, 전력 공급, 열 관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 기판 업체가 양산 물량에서 일관된 수율을 달성해야 한다.
- 고객 일정에 맞춰 인텔이 충분한 생산능력을 제공해야 한다.
- 완성 패키지가 신뢰성 및 고객 인증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 모든 조립 비용을 포함해 수율과 생산 시간이 CoWoS 대비 경제성을 만들어야 한다.
전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 영입의 의미
인텔은 SK하이닉스와 SK온의 전 최고경영자인 이석희 씨를 인텔 파운드리의 수석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이 부사장은 첨단 패키징, 시스템 통합, 후공정 기술 개발 및 제조를 총괄한다. 27
이번 인사는 인텔이 EMIB-T와 관련 패키징 기술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업계 네트워크와 실행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메모리 산업을 직접 경험한 경영진을 확보했다는 점도 인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입이 SK하이닉스와 인텔 사이에 EMIB 생산 계약이 체결됐다는 증거는 아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인텔이 패키징 사업 전반을 전문화하고 확장하려는 움직임의 일부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EMIB는 CoWoS의 자동 대체재가 아니다
CoWoS에도 여전히 강점이 있다. AI 칩 공급망에 폭넓게 통합된 성숙한 기술이며, 다이와 HBM 사이에 매우 고밀도 연결을 구현하는 데 적합하다. TSMC의 CoWoS-L은 최대 레티클 면적의 5.5배에 이르는 패키지에서 양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기존 플랫폼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18
EMIB는 국부적인 고밀도 연결, 모듈화, 상대적으로 작은 실리콘 사용 면적이 유리한 패키지 구조에서 더 매력적일 수 있다. 반면 배선, 기판 설계, 조립, 열 관리, 고객 인증이라는 자체 과제도 안고 있다.
결국 비교 대상은 ‘작은 브리지’와 ‘대형 인터포저’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완성 패키지의 성능, 비용, 수율, 신뢰성, 양산 전환 속도를 모두 비교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SK하이닉스의 시험은 공식 수주가 확인되지 않았더라도 중요하다. HBM 공급업체는 AI 칩 패키징의 기술적·상업적 요구사항에 가장 가까운 생태계 구성원 중 하나다. SK하이닉스와의 시험이 성공하면 인텔은 주요 업계 참여자를 통해 EMIB 플랫폼을 검증했다는 신호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이것만으로 EMIB가 시장 전반에서 CoWoS를 대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인텔 파운드리의 패키징 사업 전략과의 연결고리
인텔은 첨단 패키징을 인텔 자체 프로세서에만 쓰는 내부 역량이 아니라, 외부 고객에게 제공하는 독립적인 파운드리 서비스로 키우려 하고 있다. 업계 보도에 따르면 인텔 경영진은 패키징 매출이 10억 달러를 넘어 장기적으로 연간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계약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제시해 왔다. 고객들이 생산능력 확보를 위해 선지급이나 물량 약정을 검토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4142
SK하이닉스의 실질적인 EMIB 검증은 이 전략을 두 방향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 첫째, 외부 메모리 업체의 HBM이 인텔 패키징에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다. 둘째, TSMC 패키징 생태계의 대안을 찾는 맞춤형 AI 칩 설계업체를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대만 팹리스 업체 미디어텍은 고객이 TSMC와 인텔의 첨단 패키징 기술 중 선택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는 생태계 차원의 의미 있는 신호지만, 공개된 대규모 EMIB 양산 수주와 같은 의미는 아니다. 33
EMIB-T가 구글 TPU에 사용될 가능성도 여러 보도에서 거론됐지만, 현재 제시된 근거만으로 구글의 물량이나 매출을 확정된 수주로 보기는 어렵다. 다른 주요 GPU 고객에 대한 주장도 마찬가지다. 기술 평가, 설계 채택, 초기 생산 논의는 안정적인 양산 약정과 구분해야 한다. 3
인텔 앞에 남은 제약
인텔의 기회는 분명하지만 아직 제한적이다. TSMC는 공정 기술, CoWoS 인증 이력, 고객 통합 경험, 생산 기반이 이미 자리 잡았기 때문에 다수의 선도 AI 가속기 업체가 선택하는 기본 파트너로 남아 있다. 엔비디아나 AMD가 EMIB를 대규모로 분산 도입하기로 약속했다는 신뢰할 만한 공개 근거도 부족하다.
따라서 앞으로는 협력설 자체보다 다음 단계가 중요하다.
- SK하이닉스의 시험이 연구·엔지니어링 샘플 단계를 넘어서는지
- LG이노텍을 포함한 기판·소재 업체가 실제 인증을 통과하는지
- 특정 공정 수율이 아닌 완성 패키지의 안정적인 종단 간 수율을 확보하는지
- 고객이 필요한 시점에 인텔이 충분한 생산능력을 제공하는지
- 외부 고객 제품이 실제로 양산에 들어가는지
가장 근거에 부합하는 결론은 신중하지만 의미가 있다. SK하이닉스의 EMIB 시험은 HBM 패키징 선택지를 늘리려는 시장의 요구 속에서 나온 긍정적인 검증 신호다. 그러나 아직 인텔이 공식 생산 고객을 확보했거나, CoWoS를 대체했거나, 장기적인 수십억 달러 패키징 매출을 확정했다고 볼 단계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