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가 6월 GEO를 통해 발표한 수정 전망치는 마치 도미노처럼 줄줄이 쓰러지는 모양새다. 이 모든 하향 조정의 출발점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무려 14주 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냉혹한 가정에 기반한다 . 구체적인 칼날이 향한 곳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피치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물가 상승이 실질 임금을 짓누르고 소비를 억제하며 기업의 투입 비용을 끌어올리면서, 성장률 전망 하향 조정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
이처럼 삭풍이 부는 와중에도 나 홀로 훈풍을 맞은 지역이 있다. 바로 중화권이다.
피치의 이번 6월 보고서는 이미 지난 3월부터 경고등을 켜왔던 '고유가 악몽 시나리오'를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당시 브라이언 콜턴 피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만약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치솟아 그 수준이 유지된다면, 이는 중대한 글로벌 공급 충격”이라며 4분기 후 세계 GDP를 0.4% 끌어내리고 유럽과 미국의 물가를 최대 1.5%p까지 밀어 올릴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
이제 6월 전망은 이러한 우려를 기본 시나리오 안으로 편입시켰다. 브렌트유 평균 가격 전망을 배럴당 70달러에서 87달러로 대폭 끌어올렸으며 , 글로벌 석유·가스 부문 전망은 '중립적'에서 '개선(Improving)'으로 오히려 올려잡았다. 유가 급등으로 소비자들은 신음하지만, 산유국과 에너지 기업에는 오히려 특수가 될 것이라는 냉혹한 분석이다
.
유가 쇼크가 세계 경제를 무너뜨리는 경로는 지극히 정직하고도 파괴적이다. 치솟는 에너지 비용이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이는 곧 실질 가계 소득을 갉아먹어 소비 여력을 빨아들인다. 동시에 기업의 원자재 및 운영 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투자 심리마저 얼어붙는, 이른바 수요와 공급 양쪽에 가해지는 '이중 압박'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글로벌 경제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는 않고 있다. 피치는 그 이유로 '인공지능(AI) 투자 붐'을 지목한다. 예상보다 훨씬 강한 AI 관련 IT 투자 모멘텀이 세계 교역과 아시아 지역 수출을 떠받치며, 고유가 충격을 일정 부분 완충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 이 AI 훈풍 덕분에 2026년 세계 경제 성장률이 2.4%까지 둔화되긴 했지만, 아직 급락하지는 않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피치가 국가 신용 전망을 다시 '중립적'으로 되돌리기 위해 어떤 체크리스트를 갖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한 바는 없다. 하지만 분석의 큰 틀에서 해법이 무엇일지는 자명하다.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고 유가가 현재의 살인적인 수준에서 내려와야 하며, 미국과 이란 간의 지정학적 긴장이 완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현재 피치의 기본 전제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14주 동안 계속되고 그 이후에나 재개된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는 당분간 속수무책으로 이 불안한 상황을 지켜보며 불확실한 레이스를 이어가야 할 처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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