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압력은 에너지 가격 상승이다. 국제 유가가 다시 배럴당 약 120달러를 넘어 아시아 신흥국 통화에 직접적인 부담이 되고 있다.
석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는 유가 상승이 곧바로 달러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 원유 대금을 달러로 결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도와 필리핀은 대표적인 에너지 수입국으로, 유가 상승 국면에서 루피와 페소가 다른 신흥국 통화와 함께 약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이란을 둘러싼 중동 긴장이 시장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특히 세계 주요 원유 운송로인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 주변의 군사적 긴장 가능성이 커지면서 유가 상승과 투자자들의 위험 회피 심리가 동시에 강화됐다.
아시아는 이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에 크게 의존한다.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원유의 약 80%가 아시아로 향한다는 분석도 있다.
2026년 초 갈등이 시작된 이후 인도 루피는 약 4.5% 약세를 기록하며 다른 아시아 통화들과 비슷한 하락 흐름을 보였다.
루피는 올해 아시아 주요 통화 가운데 가장 약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 세 가지 압력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인도 중앙은행(RBI)이 외환시장에 간헐적으로 개입해 변동성을 억제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필리핀 페소 역시 지정학적 긴장이 커질 때마다 달러로 자금이 이동하면서 약세 압력을 받고 있다.
최근 한 거래일에는 달러당 약 61.48페소 수준까지 하락했다.
필리핀 정부는 시장 안정화를 위해 외환보유액을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갈등이 시작된 이후 필리핀 외환보유액은 약 8.1% 감소해 약 1,040억 달러 수준으로 줄었다. 이는 통화 방어 과정에서 보유액이 사용됐음을 보여준다.
스리랑카는 조금 다른 접근을 선택했다. 달러 수요 자체를 줄이는 정책을 도입한 것이다.
2026년 5월 정부는 차량 수입에 50% 할증세를 부과했다. 단, 오토바이와 삼륜차는 제외된다.
이 조치는 3개월 동안 차량 수입을 늦추도록 유도해 외환보유액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아시아 여러 국가들은 통화 급락을 막기 위해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런 조치는 단기적으로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달러 강세와 유가 상승이라는 글로벌 요인이 지속되면 통화 추세 자체를 바꾸기는 어렵다.
문제는 통화 약세가 단순한 외환시장 이슈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가가 높은 상태가 지속되고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 다음과 같은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신흥국 정부는 **“지금 통화를 방어할 것인가, 아니면 외환보유액을 아껴 미래 위기에 대비할 것인가”**라는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이번 상황은 신흥국 경제의 오래된 구조적 취약점을 다시 보여준다. 달러가 강해지고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 통화가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